우리나라처럼 난방 잘 되고, 대중교통 편리하고, 인터넷 빠르고, 밤늦게까지 놀고 먹을게 풍부한 나라는 직간접 경험상 없는 것 같다. 밤 12시에도 치킨과 맥주, 회, 족발 등 원하는대로 시켜먹는 다는 건, 뉴질랜드에서는 상상불가다. 위에 나열한 것들이 행복의 척도일 수는 없지만 편리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외국생활시 마주하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불편한 곳에서 낯선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수난이다. 이 수난을 어떻게 극복하며 2년의 시간을 보냈는지 나누려 한다.
뉴질랜드 겨울에 흔히 볼 수 있는 실내 복장. 수면 잠옷과 수면가운, 수면 양말, 두꺼운 실내화. 뒤쪽에 보이는 양털이불은 한 줄기 희망이다.
뉴질랜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쪽빛 하늘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다. 물론 이런 축복을 만끽할 날들도 많다. 하지만 섬나라 특성상 기후변화가 심하고 비도 자주오고 일교차가 커서 여름에도 밤에는 쌀쌀할 때가 있다. 더 문제는 겨울이다. 내가 머문 도시 타우랑가는 겨울에도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지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보일러 시설이 거의 없다. 온풍기와 전기 히터 등에 의존해야 하는데 밤새 온풍기를 틀면 건조하고 전기요금도 어마어마하게 나오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5월말에 뉴질랜드에 도착했는데 겨울에 진입하는 시기여서 그런지 밤에 추워서 몇 번이고 잠을 깼다. 전기장판과 전기히터가 필수라고 하는데, 난 괜찮지만 6세 아들을 전기장판 위에서 자게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인들에게 물어 알게 된 것이 양털이불이다. 이것은 신의 한 수 였다. 뉴질랜드는 양이 많은 나라기 때문에 크고 속이 꽉 찬 양털이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브리스코(Brisco)와 케이 마트(K-Mart), 웨어하우스(Warehouse) 등에서 판매하는데 50% 이상 할인 할 때가 많아 큰 맘 먹고 가장 크고 비싼 이불을 샀다. 그날 밤 이불 안으로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가니 김이 서리는 기적을 맛봤다. 아무리 추워도 그 안에 있으면 지낼만했다. 양이 왜 추운 날씨에도 평화로운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두꺼운 소재의 수면 잠옷과 수면 가운도 도움이 된다.
친한 듯 먼 그대. 매우 친절하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이들이 많아 내가 먼저 진심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친해진 이웃 할머니와 빵을 만드는 아이.
추운 것 외에도 유학생 엄마라면 집에 대한 한두 가지 설움은 겪게 돼 있다. ‘인스펙션(inspection)’이라는 단어는 엄마들에게 공공의 적이다. 대부분이 집을 빌리는 렌트 하우스에 사는데 보통 세 달에 한 번 정도 부동산 직원이 나와 인스펙션이라고 불리는 집 검사를 하기 때문이다. 주인과 부동산 직원의 마인드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잔디관리, 욕실 샤워부스 관리 상태, 곰팡이가 생겼는지, 카펫은 깨끗한지, 집에 손상된 곳은 없는지를 꼼꼼히 점검한다. 철저한 사람들은 창틀의 먼지까지 체크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인스펙션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새로 집을 구하는데 불이익이 생길 수 있고 보증금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특히 샤워실 물때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샤워 후 밀대로 물기를 털어줄 것을 추천한다. 곰팡이 제거제와 카펫 세정제, 오븐 클리너 등 청소 관련 전문세제들이 잘 발달 돼 있어 고민을 그나마 덜어준다.
뉴질랜드에서 한국인들이 느끼는 불편함 또는 어색함은 말도 안 되게 심심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지만 어찌 보면 그것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시티 라이프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한없는 평온함이 오히려 견디기 힘들 수 있다. 밤에 놀러나갈 때,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체험관, 배달 음식, 큰 쇼핑몰, 24시간 편의점은 정말 한국의 자랑인 것 같다. 집 밖에 나가 고개를 둘러도 보이는 건 집뿐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도시엔 지하철과 기차가 없고 원하는 버스를 타려면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슈퍼마켓이라도 가려면 개인 자동차가 필수다. 반면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들이 적은만큼 좀 더 가족에, 자연에, 이웃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아이와 바닷가로 산책을 가거나 이웃들과 크고 작은 파티를 함께하며 무료함을 달랬지만 따분하고 심심한 삶은 2년 내내 극복해야 할 숙제였다. 한국 엄마들끼리 종종 서로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놀게 하고, 자기도 했는데 그곳이기에 가능한 즐거움이었다.
뉴질랜드를 즐기기 위해선 지루함, 조용함과 익숙해져야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집 밖에 없고, 우리 집에서 조금 더 걸어 나오면 바다가 기다렸다. 아이와 저녁 산책 중 한 컷.
뉴질랜드인들의 특성에 관해 정의내리기는 힘들다. 모든 사람들을 한두 가지 특징으로 나누긴 조심스럽다. 다만 개인적으로 느끼고, 엄마들 사이에 많이 얘기되는 뉴질랜드인들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매우 친절하다는 것이다. 길에서 마주칠 때 미소와 인사는 기본이다. ‘멋져요(Awesome, cool)’, ‘괜찮아요(No worries, All right)’라는 말을 자주 하고 환한 얼굴로 대해준다. 하지만 막상 더 깊게 친해지기는 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외국인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기보다는 조금 더 진중하게 사람을 파악하는 경향이랄까? 개인적으로 같은 섬나라여서 그런지 일본인들과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친절하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 좀 더 자주 마주치고 꾸준한 신뢰를 주었을 때 마음을 여는 것 같다. 인종차별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 때문에 고민하고 외로워하는 엄마들도 많다. 내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니 너무 힘들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들이 먼저 다가오는 일은 드물다. 우리가 타국에 가 있는 것이니 먼저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서면 의외로 진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
뉴질랜드는 푸른 자연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안에 복병이 있다. 온갖 식물이 공존하는 만큼 원인 모를 알레르기가 엄마와 아이에게 찾아올 수 있다. 우리아이도 뉴질랜드에 가자마자 토끼처럼 자꾸 코를 쫑긋거리고 킁킁 소리를 내서 한동안 맘 아팠던 기억이 있다. 또 카펫 먼지 등으로 인해 눈과 코의 고통을 호소하는 한국인들도 많다. 대부분 집 바닥에 장판이나 나무가 아닌 카펫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뉴질랜드는 약이 잘 발달돼 있고 오가닉 제품이 많아서 약을 이용해, 또 식단 관리를 통해 이 난관을 극복했다. 특히 샌드플라이(sandfly)라고 불리는 벌레가 사방에 있는데 물리면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잠을 못 잘 정도로 가렵고 고통스럽다. 경험상 뉴질랜드에서 겪은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인 것 같다. 야외 활동을 할 때는 무조건 벌레퇴치제를 뿌려주는 것이 답이다. 또 샌드플라이에 물렸을 때 바르는 약이 따로 있어 고통을 조금은 경감시켜준다.
음식 종류는 어느 식당을 가든 비슷하지만 가벼운 한 끼 식사라고 생각하기엔 비용이 부담스러운 경우도 많다. 할인쿠폰을 이용해보자.
생각보다 비싼 물가에 놀랄 수도 있다. 자체 생산하는 키위와 레몬 등 제철 과일, 빵, 와인 등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 비해 가격이 높은 경우가 많다. 섬나라인만큼 농산품 외에도 많은 공산품을 멀리서 수입해 오는 것과 공장 등이 잘 발달돼 있지 않은 것, 인건비가 비싼 것 등이 이유인 것 같다. 식당에서 한 끼 6천~7천 원에 밥과 반찬을 풍성히 먹을 수 있고 짧은 거리는 만 원 이하의 택시요금으로 이동 가능한 한국생활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음식 종류도 스테이크와 파스타, 햄버거, 샌드위치, 피시 앤 칩스가 대부분인데다 음식 두 개만 시켜도 4만 원이 훌쩍 넘으니 부담스러웠다. 특히 문구용품은 작은 스카치테이프 한 개에 4천 원, 공책 하나에 3천 원 가까이 하고 품질도 좋지 않으니 우리나라에서 많이 준비해 가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수건도 많이 준비해가는 걸 추천한다. 뉴질랜드에서 산 모든 수건에서 먼지가 묻어나와 사용할 수 없었던 흑역사가 있다. 물가가 비싸다고 뉴질랜드 즐기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분야별 할인쿠폰이 가득 들어있는 ‘엔터테인먼트 북’을 구입하면 도움이 된다. 6만~7만 원 정도의 가격인데 일 년 내내 식당, 영화관, 키즈카페 등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
시내 주행 속도가 대부분 50Km/h 미만이어서 잠시 집중력을 잃었다가 과속 범칙금도 내고, 운전방향이 우리나라와 반대여서 역주행도 해 보고, 문화와 언어의 차이로 인해 실수도 연발하며 지낸 시간들. 그래도 좋은 점들에 집중하며 보낸 하루하루였다. 특히 아이가 행복하니 그 행복에너지가 내게도 전달됐고, 가족의 총책임자라는 막중한 아우라가 수난 또한 기꺼이 받아들이고 극복할 힘을 준 것 같다. 막상 닥치면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 이제 모든 과정을 마치고 다시금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될 시간. 유종의 미를 거두며 마무리하기 위한 방법은 유학 이야기 마지막편 '제10화 귀국준비 A-Z’ 편에서 이어진다.
청정국가, 자연의 축복이 함께하는 뉴질랜드이지만 이에 따른 알레르기와 벌레도 많다. 야외활동시에는 벌레퇴치제 필수!
*Talk! Talk! Kiwi English
뉴질랜드인들을 애칭으로 키위(Kiwi)라고 부릅니다. 키위라는 과일 때문이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만 서식하는 키위라는 새가 있기 때문이죠. 키위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어체 위주의 영어를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 가면 자주 들을 수 있으니 미리 익혀두시면 좋아요.
1. sleepover: 외박, 친구 집에서 잠자기
뉴질랜드 학생들은 친구 집에서 놀고 잠자는 ‘슬립오버(sleepover)’를 가끔씩 합니다.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하는데 단순히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것 먹고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밤늦게까지 노니 아이들에겐 천국과 같은 시간이겠죠? 물론 아이들의 영어실력이 많이 늘기도 하고요. 보통 한 번 초대받으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엄마들은 아이들이 재밌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2. buddy: 친구, 단짝
‘buddy’는 ‘친구’라는 뜻으로 뉴질랜드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친구들끼리 “Hi~ buddy(안녕~ 친구)”,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만났을 때 “Hello~ buddies(안녕~(꼬마)친구들)”라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학급에서 현지아이와 한국유학생을 1:1로 매칭해 서로 돕고 친구가 되게 하는 ‘buddy’제도를 시행해 유학생활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오세진 방송작가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1863 저희 비전 유학원을 통해 타우랑가에서 2년 정도 조기유학을 마치고 2018년도에 귀국한 가족의 글입니다. 출국준비부터 귀국까지 모든 과정을 상세히 다뤄 조기유학을 준비하시는 가족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며 경기일보에 연재된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