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 바다에서 열리는 작은 운동회. 해변도시인 타우랑가에서 바다는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다.
수업이 한창이어야 할 시각,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줄지어 학교 밖으로 향한다. 대부분 맨발이다. 5분 정도 걸으니 모래사장 너머로 파란 바다가 넘실거린다. 오늘은 ‘비치데이.’ 바닷가에서 즐기는 미니 운동회다. 아이들의 열정적인 춤사위를 볼 수 있는 ‘디스코데이’엔 화려한 음악, 조명과 함께 아이들의 끼가 폭발한다. 평소 남들 앞에서 춤과 노래하는 것을 꺼려하던 내 아이가 무대 한복판에 있다. 아이는 반에서 유일한 한국 유학생이다. 뉴질랜드 타우랑가에서는 한국 유학생을 한 반에 한 명만 두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해야 하는 구조, 즐겁게 녹아들 수 있는 문화 속에서 아이는 성장해 가고 있었다.
일정한 연령이 되면 동시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여느 나라들과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만 5살 생일이 지나면 자유롭게 입학이 가능하다. 아이의 입학을 앞두고 근처에 있는 학교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유치원에 다니며 내내 놀기만 했던 아이가 과연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유치원을 보낼 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으로 학교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절로 안도의 숨이 나왔다. 눈길을 끈 것은 광활한 잔디 운동장과 놀이터, 그리고 편안해 보이는 교실 분위기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곳이라는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수업시간에 제각각 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 교탁도, 교과서도, 등수도 없는 뉴질랜드 초등학교의 풍경이다.
개별 책걸상은 안 보였다. 열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바닥에 모여 앉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미술과 수학 등 교과 활동을 할 때도 테이블에 몇 명씩 둘러앉아 정다운 시간을 가졌다. 교사가 각각의 소그룹을 돌아다니면서 학생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수업을 진행해서인지 교탁은 없었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대부분 아이들이 손을 들고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묘기에 가까운 체조를 하며 돌아다니고 먹고 노느라 웃음소리가 한 가득이다. 돌아본 학교 모두 괜찮아 보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로 결정했다. 차를 이용해 3분 거리다.
뉴질랜드 학제는 초등(primary) 6년, 중등(Intermediate) 2년, 고등(College) 5년 총 13년으로 한국보다 1년이 길다. 학비는 자국민에게는 무료지만 유학생들은 1년에 1천만 원 내외를 내야한다. 1년 단위로 또는 학기별로 내도된다. 한 학년은 4학기제로 진행되는데 보통 1월말이나 2월에 새 학년이 시작돼 10주 공부, 2주 방학이 반복되며 12월에 시작하는 여름 방학만 1달 이상이다. 학기 중에도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전에 학사 일정을 파악해 놓으면 도움이 된다. 한 달 정도 다니는 것도 허용하는 학교가 있어 단기 유학을 생각한다면 눈여겨 볼만하다. 뉴질랜드에서 취득한 학력은 다른 영어권 나라에서도 인정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인 놀이터. 아침 간식과 점심시간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학교는 오전 8~9시 수업을 시작해 10시30분쯤 '모닝티'라고 불리는 오전 간식 시간이 있다. 아이들은 모두 교실 밖으로 나와 30분 정도 간식과 음료수를 먹으며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지고, 놀이터에서 한바탕 신나게 논다. 아이들이 햇볕을 쬐며 뛰어 놀아야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이 시간 동안 건물 내부를 잠가놓는 곳도 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선생님들 몇 명이 당번을 맡아 놀이터와 운동장 등을 돌아본다. 그리고 잠시 학급 활동을 한 뒤 12시면 점심시간 종이 울린다. 점심도 대부분 교실 밖에서 먹는다.
아이들은 보통 2시~3시 사이에 하교한다. 처음엔 아이가 1학년인데 좀 긴 시간이 아닐까 했지만 기우였다. 아이는 솔직히 노느라 바빴다. 놀고 싶기 때문에 영어도 더 빨리 알아듣고, 말할 수 있어야 했던 것 같다. 이에 따른 엄마의 희생은 모닝티와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처럼 밥과 반찬을 정성껏 싸봤자 빨리 먹고 놀고 싶으 마음에 잘 안 먹으니, 간단한 샌드위치와 머핀, 과일, 과자 정도로 준비하는 게 대부분이다.
책에서 배우는 간접경험 못지않게 직접경험을 중시하는 교육. 경찰에게 직접 교통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적다보니 과연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솔직히 특정 지식의 축적에 교육의 주안점을 두는 부모라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시험도 많지 않고 성적에 따라 등수를 매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교과서가 따로 없는 경우도 많다.
가장 눈에 띈 것은 교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학생의 학습 능력에 맞춰 스스로 공부하는 자율 학습형 교육 시스템이었다. 교사는 아이의 특성을 파악해 그룹별 또는 개인별로 수준에 맞는 수업자료를 따로 준비한다. 1학년 아이들 중에서 수학이 우수한 아이들에게는 2학년 자료를 교육시키는 방식이다. 또 독서와 토론을 중시해 매일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책을 빌려주고 수업시간에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주 1회 정도는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물건을 가지고 가는 ‘셰어링 데이(Sharing day)’가 있어서 수줍던 아이도 발표에 익숙해져 갔다. 따로 등수는 없지만 연 2회 정도 아이의 학습 성취도와 성향을 알려주는 부모와의 인터뷰를 진행해 아이의 적성과 특기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물건을 가져와 발표해 보는 셰어링 데이(sharing day). 한 친구가 가져온 토끼를 만지며 웃고 있는 아이들.
건강한 심신 발달에도 집중하는데 학생들은 공부 외에도 스포츠 활동과 클럽활동 등을 하며 소질과 적성 계발에 몰두한다. 때문에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고, 창의력과 성취감, 자신감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각종 언론사, 학회 조사 결과 전인교육, 미래 지향적 교육시스템 등에서 상위권에 꼽히는 것을 보면 뉴질랜드 교육방식의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된 것이 아닐까?
특이했던 점 중 하나는 뉴질랜드 학교 대부분이 모든 반을 크게 4개~5개의 그룹으로 나눠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것. 한국으로 생각하면 운동회 때 청군, 백군과도 비슷한 개념인데 학년별로만 아이들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그룹에 다른 반 친구들, 저학년과 고학년이 함께 포함돼 있다. 학교 행사 때나 수업시간에 함께 둘러앉아 응원을 하고, 함께 활동도 하며 저학년에게는 협동심을, 고학년에게는 리더십을 길러주는 계기를 마련한다.
‘아무리 뉴질랜드 교육이 좋아도 우리 아이가 영어를 잘 못 하는데 어쩌지?'라는 고민은 각 학교마다 갖추고 있는 유학생 영어 교육(ESOL)이 해결해 준다. 학생들이 어느 정도 영어실력을 갖추게 될 때 까지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유학생 위주의 영어 교육이다. 유학생 담당교사와 영어 지도교사가 따로 있어 유학생과 부모들을 상대한다. 한국 유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호의적인 편이다.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영어수업(ESOL). 아이 영어 수준별로 주1회~5회까지 따로 영어교육을 실시한다.
학교에 따라 유학생 부모를 위한 티타임, 요리 교실 등을 열어 학부모들의 의견을 듣고 엄마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도 한다.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는 포트럭 파티, 바비큐 파티, 소풍, 여행 등도 기획한다. 뉴질랜드에서는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학교 활동도 많다. 어느 정도 영어회화가 가능한 학부모들은 학교 정원관리, 체육 활동 지원 등 봉사활동을 뉴질랜드 학부형과 함께하며 자연스레 아이들끼리 어울리는 기회도 만들 수 있다.
이렇듯 뉴질랜드 조기유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타 영어권 국가에 비해 낮은 환율과 생활비로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한다는 점일 것이다. 학교에서 얼마나 재밌게 노는지,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제6화 학교에서는 뭐 하고 놀까?’ 편에서 소개한다.
*Talk! Talk! Kiwi English
뉴질랜드인들을 애칭으로 키위(Kiwi)라고 부릅니다. 키위라는 과일 때문이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만 서식하는 키위라는 새가 있기 때문이죠. 키위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어체 위주의 영어를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 가면 자주 들을 수 있으니 미리 익혀두시면 좋아요.
1. Play date: 놀이 약속
아이를 둔 엄마들은 플레이 데이트(play date)란 말을 종종 듣게 될텐데요. 날짜와 시간을 정해 아이들을 같이 놀게 하자는 약속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만나 아이들은 놀고 엄마들은 커피마시며 이야기 나누기도 하죠? 딱 그 형태입니다.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을 친구 집에 맡기고 엄마들은 볼 일 보러 가기도 합니다.
2. Aye?: 그렇지? 안 그래?
뉴질랜드에서 정말 많이 듣게 될 말입니다. “그렇지?” 정도의 의미입니다. 발음은 에이(Aye)? 이고, 보통 문장 맨 끝에 넣어 줍니다. 예를 들어 “날씨 좋지?”를 “The weather is great aye?”로, “맛있지?”를 “It’s yummy aye?”로 표현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정말 많이 사용해서 처음에는 왜 아이들이 다 말끝에 “에이?”라고 하지라며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키위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누군가에게 aye? 라고 묻는다면 “뉴질랜드 사람이세요? (Are you from New Zealand?)라는 질문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오세진 방송작가